1887년 7월 28 일~ 1968년 10월 2일

프랑스의 예술가로써 오늘날 현대예술 장르에

커다한 영향을 끼친 예술가로 손에 뽑히고 있습니다

 

 

 

 

 

1887년 7월 28일에 노르망디의 작은 마을 블랭빌에서 태어나면서

뒤샹 위로 두형이 예술가였는데 자신도 예술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형들은 뒤샹을 무시했지만 이것에 열등감을 느끼고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초현실주의 작가와 예술가들과 교류를 많이 하면서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는 프랑스를 떠나서 미국국적을 취득했습니다

뒤샹의 작품과 아이디어는 1차 세계대전 이후에 미술 발전에

많은 영향을 주고 많은 근대 미술 수집가에게 한 조언은

수집가들이 서양 미술 세계의 취향을 만들어내는데 도움도 줬습니다

 

 

 

 

 

현대예술에서는 피카소보다 더 중요한

예술가라는 말로 평가할수 있습니다

그가 한 각종 기괴한 예술들은 오늘날 아방가르드의 예술

개념주의 예술 키네틱 아트 젠더이론 제도비판 등

굉장한 많은 분야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심지어 새로운 예술이 나오게 되면 뒤샹과 연관관계를

찾는 일이 있을 정도니 대단합니다

 

현대 예술가들은 뒤샹이 말한 현대 산업사회의 산물들에

종속되지 말고 자신만의 예술을 해라라는 말을 듣고

예술을 펼치고 있습니다

 

 

 

초현실주의 였던 화가 입니다

처음에는 키리코풍의 괴상한 물체 인간끼리의 만남 풍경등을 그리다가

1936년부터 고립된 물체 자체의 불가사의 한 힘을

보여주는 독특한 세계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말과 이미지를

애매한 관계로 양자의 괴리를 드러내는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후에 팝 아트쪽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입니다

 

 

 

 

 

대표작으로는 초현실주의 기법을 사용해서

1929년에 캔버스에 유화로 그린 작품인 담배파이프 하나를 그녀놓고

밑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라는 문장을 남겨서

관객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줬습니다

 

 

 

 

 

1959년에 그린 초현실주의 작품인 해변 위로

무중려으로 떠있는 바위를 그렸습니다

이 작품은 후에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모티브가

되기도 합니다ㅎ

 

 

부농의 아들로 태어나서 법학가가 되려고 했지만

포기하고 화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는 화가로서의 특징은 철저한 사실주의라고 볼수 있습니다

천사를 그려달라고 한다면 천사를 데러오면 그려주겠다라고

말한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그래서 사실파를 무척 싫어하는 인상파 화가 에드가 드가는

쿠르베가 그린 그림을 보면서 어쩌라고? 차라리 사진을 찍으면 되는거 아니야

하면서 비난을 했는데 당연히 쿠르베와 드가의 관계는 물과 기름이였다고 합니다

 

 

그의 유명한 작품인

안녕하세요 쿠르베씨

또한 원래 법학가 지망생이여서 파리코뮌에 참가할

정도로 정치와 사회에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가 그린 그림인 세상의 기원이 새롭게 주목받고도 있습니다

 

대표작으론 키스가 있습니다

미술이 격동했던 19세기 말에 회화가로 교육받았지만

건축 장식회화에서 탈피한 뒤에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게 되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사실적인 회화도 잘해 점점 더 평면적이지만 장식적인

구성적인 방향으로 나아갔고 화풍 뿐 아니라 일련의 문제작에서

특유의 반항적이면서도 회의적인 주제의식을 보여줘서 큰 비난과 함께

명성을 얻어냈습니다 그러나 20세기에는 모더니즘 계열의

미술이 빠르게 기존 회화 경향을 대체하였고 클림트의 이후의 작가들은

더 이상 클림트 같은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대강다으이 천장의 패널화를 의뢰 받게 되는데

클림트가 그린 3점의 대학 회화의 화풍이 기존 건축물의 패널화와

다르기도 하였지만 그림이 담고 있던 주제때문에 관계자들을

화나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유는 마치 인간이 우주의 이치를

알기에는 미약하고 인간은 삶에서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정의보다는

고통과 무질서가 더 가까이 있다고 해석하는 그림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유명하지만 전통과도 다르면서 훗날의 미술과도

고립된 섬과 같은 위치에 있는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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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김득신과 함께 조선 3대

풍속화가로도 불리고 김홍도 장승업과 함께

삼원이라고도 불렸습니다

 

 

 

 

 

김홍도는 서민의 생활을 그렸다면 신윤복은

양반가의 생활을 주로 그렸습니다

특히 여성들의 생활이나 남녀가 어울려 노는 모습을

화폭에 담았는데 김홍도와는 다른 느낌을 주었습니다

기생과 양반들이 주로 모델로 그려 신윤복의 풍속화

모음집 혜원전신첩은 양반 문화와 그들의 복식 연구에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가 남긴 그림 말고는 그에 대한 자료가 부족해

여성을 주로 그린 신윤복이 여자가 아니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현재 초상화도 없어 의견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조선후기의 화가

왕세손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경력을 쌓았습니다

1781년에는 어진화사로 임명이 되어서 정조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1788년에는 스승 김응환과 함께 일본지도를 그려오라는

밀명을 받고 떠났는데 김응환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혼자 대마도를

건너가서 일본 지도를 그려 돌아옵니다

 

 

 

 

김홍도는 영 정조 시대에 활동하면서

조선의 화풍에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청나라를 통하여 익힌 서양화법을 도입하여

색채의 농담 짙고 연한정도와

명암 원금감을 드려낸 훈염기법을 창안해냅니다

 

 

또한 이전 화가들은 그리지 않은 민중의 삶을 그려낸

풍속화를 많이 그렸습니다

그의 일생에 대해 알려진 것보다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아 여러가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김홍도가 바로

일본의 천재화가인 샤라쿠였다는 주장입니다

샤라쿠는 갑자기 나타나 10개월동안 200여점의

그림을 남기고 없어졌는데 한국의 일부 학자들은 샤라쿠의

정체가 김홍도였다고 주장하여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그 근거는 김홍도가 일본에 지도를 그리러 간 시기와 샤라쿠가

나타난 시기가 겹치는 것뿐만아니라 화풍에 있어서 필체나

여타 등등이 유사하다는 점이랍니다

그리고 더 재밌는 주장은 김홍도나 샤라쿠가 발가락이 6개여서

그들이 그린 그림 중 발가락이 6개인 그림이 있다는 것입니다

 

  

 

 

네덜란드의 화가 입니다

바로크 시대의 거장이기도 하고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화가 입니다

일찍이 예술에 두감을 보여서 미술을 배우게 되고

1624년에 고향 레이덴에서 돌아와 아틀리에를 열었습니다

 

 

 

 

한동안은 독학으로 친척이나 이웃 성서 등에 영감을 얻어서

그림을 그리다가 1632년에 암스테르담 의사협회에서 의뢰받은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가 호평을 받아 암스테르담에

정착하게 됩니다 이때 부터 10년간은 렘브란트의 생활이

가장 빛났습니다 명성이 높아 많은 의뢰도 받고 제자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화풍이 성숙해지면서 평면적인 초상화로 만족못해

내면을 표현하고자하는 욕구가 강해지면서 종교나 신화적인 소재를

따서 그리다가 자화상이 많아지다가 세속적인 성공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렘브란트는 명암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화가로써

빛과 어둠의 마술사라는 별명도 붙었고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또한 자화상을 많이 그렸던 화가로 유명한데 100점 이상이나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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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시대 독일의 유명한 화가입니다

아버지는 칼뱅주의자였는데 자신의 화풍은

가톨릭 수호성향을 받은 화풍이였습니다

종교개혁 열풍 때문에 혼란스러운 독일을 어린시절에

빠져나와서 벨기에에서 14살부터 그림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초창기에는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의 작품을

모작하였다고 합니다 특히 색감은 라파엘로와

틴토레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성경 신화 인물 등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는데

펠레페 4세 찰스 1세 마리 드 메디시스와 같은 왕족들에게도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오스트리아 왕실에서는 왕실화가로 임명도 되었고

펠리페4와 찰스 1세는 기사작위를 수여하기도 하였고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외교관으로써 두 나라의 평화를

위해 활동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의 작품에 보이는 특징은 역동적인

묘사와 구도 화려한 색채입니다

하지만 세세함이 떨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인들을

풍만하게 그리는 걸로 유명합니다

 

 

 

 

이탈리아의 화가입니다 본명보다는 카라바조라는

이명으로 유명합니다

일반적으로는 화가 미켈란젤로로 통용되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와는 이름이 같습니다

인지도에서는 밀리는면이 있지만 사실 카라바조 역시도

부오나로티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미술사에서는 중요한

인물로 뽑히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채롭고 화려한 르네상스 회화는 다르게

어둠컴컴한 배경 속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들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어서 극단적인 명암이 뚜렷하게 대비되는 회화는

당시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겨줍니다

르네상스를 끝내고 바로크를 열었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흑역사가 된 이유는 그의 생활이

난잡했기 때문입니다 미술 측면에서는 인정을 받았지만

성격이 안좋아 많은 범죄를 일으켰다고 합니다

그의 뛰어난 재능을 인정한 재벌이나 성직자들이 그의 폭행과

범죄를 사면해주었지만 워낙 사고를 많이 쳐서 나중에는

높으신 분들이 수습해주기도 힘들 정도 였다고 합니다

 

 

 

우르비노에서 출생하였지만 젊은 시절 피렌체로 건너가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사사하기도 합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3대 회화의 거장이기도 하지만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에 비해서는 인지도가 낮은편입니다

 

 

 

 

그림체는 부드럽고 유려한 그림체가 특징입니다

대표작으로는 성모자상과 아테네 학당이 있습니다

한때에는 성 베드로 대성당 공사에서도 참여하여

성당의 평면을 그리스 십자가에서 라틴 십자가로 바꾸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자화상을 보면 알수 있는 상당한 미남으로 여성들의

인기가 끊이지 않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유해는 로마 판테온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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