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화가이자 신인상주의의 창시자라고도 불립니다

대부분 화가와 다르게 부자집 출신입니다

어릴적부터 경제적인 부족함없이 자라 교육도 문제 없이

받았습니다 1880년 초반부터 열심히 화가로 활동은 하지만

주류 예술계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면서 인정 받지 못하던

다른 화가드로가 어울리면서 지냈습니다

 

 

 

 

 

이시절 친구로 지내던 화가 폴 시냐고가

같이 점묘법을 개발하여서

주목을 받게 됩니다

세계 최초로 도트 노가다를 한 사람입니다

 

 

 

 

2년에 걸쳐 심혈을 기울린 그림인 일요일 오후가 주목을 받게

되면서 이름이 알려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성공가도가 다가올때 만 31살이라는 너무 젊은 나이로

갑자기 병으로 쓰러지고 맙니다

 

 

 

 

현대에 와서 그가 걸린 병은 폐렴으로 보고 있습니다

주목을 받은지 얼마안되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난

비운의 화가라고 볼수있습니다

 

점묘법으로 유명하고 19세기 회화 역사를

바꾼 화가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호는 오원

사람에 따라 안견 김홍도 등과 함께

조선의 3대 화가라도 불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미술 연구들에게 3대 화가 의견이

천지만별입니다

김홍도를 빼고 나머리 두 자리에 꼽는 인물이

연구자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신육복이나 김독신 심사정 정선 이암 등

많은 훌륭한 화가들이 나옵니다

3대 화가라는 명칭이 잘못됬다고 차라리

조선 유명화가들이라고 하는 주장을

 보여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림체는 단순한 필치지이지만 속도감이 있고

대담하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중국 청나라 말 필체를 도입하여서 한국식

회화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소재 면에서는 진경산수를 선보인

정선이나 풍속화를 그린 김홍도

신윤복과는 다르게 전통 도석인물화만을

고집하여서 고루하다는 평가도 받습니다

 

 

 

 

 

정선이나 김홍도의 뒤를 이었다면

시대상을 반영한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하는

연구자들도 많습니다

 

 

 

근대 조각의 시조이면서 근대 조각 사상 가장 위대한

조각가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근대 조각의 시조이면서 근대 조각 사상 가장 위대한

조각가입니다 그가 추구한 웅대한 예술성과 기량은 조각에 생명과

감정을 불어넣어주는데 예술의 자율성도 부여했습니다

 

 

 

조각계의 직간접으로 모두 로댕의 출발점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로댕이 가지는 미술사적 가장 중요한 의미를 보면

그가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입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나 깔레의 시민을 봐도 손이

다른 신체 부위에 비해 더 크게 묘사되어 있는데 그것은

더욱 효과적인 감정 표현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회화에서도 인상주의가 등장하게 되면서 사실묘사와

벗어난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사실주의 작가가 아닌데도 사실적으로 보인다는것은

그 만큼 조각에 감정이입이 잘 되었다는걸 보여줍니다

실제로는 잘 취하지 않는 동작 등을 통해서

감정과 생기를 불어 넣었습니다

1917년 에는 온갖 병과 치매까지 걸려서

병원에서 발작하다 죽었습니다

 

 

 

 

죽을 당시에 유언은 난 신이다 라는 말을 하였는데

그때 돌보던 간호사가 귀찮아 맞아 당신은 신인데

똥오줌 누고 헛소리하며 죽어가는 신이라면서

톡쏘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파리에서 태어난 드가는 주로 발레 무용수나 경주마를

작품 소재로 삼았습니다

인상주의로도 분류하기도 하지만 그의 작품에서는 고전주의나

사실주의 색채를 띠고 있기도 합니다 낭만주의 영향을 받은것도 있습니다

 

 

 

 

루이르그랑 중등학교를 졸업한뒤에 법학부에

들어가지만 학업을 포기하고 국립미술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루브르박물관을 드나들면서 거장들의 그림을 익혔습니다

1865년 살롱에 오르레앙 시의 불행을 출품한뒤에

인상파 전람회에도 참가하였지만 뒤에서는 독자적인 길을 걸었습니다

 

 

 

 

초기에는 가만히 서 있는 사람만 그렸지만

후기에는 일상생활을 하는 그림도 그렸습니다

움직이는 것의 순간적인 아름다움을 포착해 그리는 독자적인

수법을 쓰고 보는 각도를 바꾸어 가면서 정확한 데생과 풍부한 색감을

표현해냈습니다 무희를 모델로 한 작품도 많아서

무용의 화가라는 타이틀도 있습니다

 

 

 

 

사실주의 그림을 무척 싫어해 귀스타브 쿠르베가 그린 사실주의

그림을 보면서 차라리 사진을 찍으라면서 악평도 했습니다

 

 

프랑스의 화가 이며

후기 인상파의 거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남프랑스 유서 깊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뼈가 약해 그는 의자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다리의 성장이 평생 멈춰버린 장애를 가지게 됩니다

장애 때문에 가족의 냉대를 받게된 그는

파리 물랑루즈를 떠돌아 다니면서 무용수나 성매매 여성등을

그리면서 소외받은 아픔과 신체 장애의 한을 달랬습니다

 

 

 

물랑 루즈의 포스터등 석판화 상업 포스터를 제작하기도 하면서

상업 포스터를 예술적 차원으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기도 합니다

 

 

 

시슬레는 파리에서 부유한 영국 부모

월리엄 시슬레와 펄리샤 셀에게 태어났습니다

1860년대 초에서 마르크 샤를 가브리엘 글레르의 작업실에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거기서 프레데리크 바지유와 클로드 모네와 피에로오귀스트 르누아르 등과

친하게 됩니다

 

 

 

 

그들은 순간적인 빛의 효과를 사실적으로 포착하여서 야외에서 풍경을 그렸습니다

당시에는 혁신적이였던 접근법으로써 색채가 더 풍부해졌고 일반 대중들이

익숙해진 시각보다도 더 넓게 그려졌습니다

그 결과로 시슬레와 그의 친구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전시도 하고 팔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됩니다

사람들에게 알려진 작품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1864년경에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작은 마을 인근의 오솔길 입니다

 

 

 

 

1870년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재정적 자원이 끊기자

시슬레는 자신의 작품들을 팔아서 혼자 생계를 꾸려나갔습니다

이후에는 시슬레는 궁핍한 삶을 살았는데 그가 사망한 이후에

금전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이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르누보의 태동기부터 쇠퇴기 까지

수많은 작품과 디자인을 보여준 아르누보 시대의 대표 화가입니다

모라비아의 이반지체에서 출생하면서 어릴때부터 그림을 그렸습니다

독실한 신자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유년기에는 성화를 그렸습니다

나중에는 파리로 가서 잡지와 광고 삽화를 그리면서

생활을 하였는데 우연하게 유명 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연극인

지스몽다의 광고용 포스터를 만들어내면서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됩니다

 

 

 

 

 

그림 하나도 당대 최고의 예쑬가와 6년 계약도 맺게 됩니다

각종 포스토와 사계 등 여러가지 작품을 제작도 하였고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을 만난 이후에는 조각도 제작합니다

인기가 폭발적이여서 쏟아지는 장신구 디자인 주문에 지친

무하가 컨셉 디자인을 담은 책 공식 자료집까지 출판했다고 합니다

 

 

 

 

 

 

체코를 대표하는 애국자이나 민족주의자이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체코 독립에 있어서는 열성적이며 독립 후에는 우표 화폐 디자인을

손수 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스타일은 극도로 이상화되어진 인물 주로 여성과 그를 장식하는

상징적인 이미지와 사물로 구성되면서 상업적 용도로 많이 사용되어

석판화가 많습니다 이러한 특징들은 초기의 연극 포스터로부터

말기의 작품들까지 공통적으로 나타나면서 초기 아르누보에

지대한 영향을 주어 있습니다

 

비너스의 탄생이 가장 유명합니다

전반적으로 색감과 질감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마네의 그림인 올랭피아가 여러가지로 악평을 받았지만

그의 그림 가운데 가장 유명한 비너스의 탄생은 꽤 호평을 받으면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나폴레옹 3세가 탐내서 구입할 정도 라고 합니다

하지만 마네의 그림이 재조명받는 오늘날에서는 상업적으로만

성공한 화가라고 의견을 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마네의 그림이 한때 들었던 원색적 도색적이라는 평이 요즘엔

비너스의 탄생이 듣고 있습니다

현재에는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한때에는 네이버 메인화면에 비너스의 탄생 그림모음이라는 주제로

글에게 링크배너가 나온적 있었습니다

 

 

 

네덜란드의 인상파 화가로 유명합니다

그의 일생은 불운과 실패의 연속이기도 하였지만

죽은 이후에는 가장 영예를 누린 화가입니다

1987년 3월에 반 고흐의 그림인 아이리스가 뉴욕의

소더비즈에서 539만 미국 달러라는 기록으로

팔리기도 하였고 가셰 박사의 초상이 크리스티즈에서는

8250만 달러에 팔리기도 하였습니다

 

 

 

 

 

고흐가 살아생전 판 그림은 단 한장이라고 합니다

전적인 생활비를 그이 동생 테오에게만 의지 할수 없었던

이 위대한 화가는 때때로 돈이 없어서

물감을 먹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은 서양의 화가이기도 합니다

그림의 배경에는 후지산과 벚꽃나무 게이사의 모습등 다양한 소재로

빽빽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유달리 일본에서

고흐의 그림은 인기가 많은편이고 연구도 많이하고 있습니다

 

 

 

 

평생을 몽마르트 풍경과 파리의 외각지역

서민촌의 골목길을 그의 외로운 심정을

빗대어서 화폭에 담았던 몽마르트를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다작을 넘어서 남작으로도 유명한데 유화만 3천점이 넘게

남겨져있다고 합니다

인물화도 그리긴 하였지만 5점 밖에 없고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여류화가 발라동의 사생아로 태어나 9살에 미구엘 위트릴로의 아들로 입적

위트릴로라는 성을 얻게 됩니다

 

 

 

 

 

 

10대 초반부터 음주벽을 보여줘 원인은 외할머니가

그의 정신병을 억제하기 위해 술을 먹인것도 있고

학창시절에 좋지 않은 친구들과 어울린것도 문제라고 합니다

 

 

 

 

 

결국 18살에 직장에 쫒아나 파리의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평생 10번 정도 알코올 중독과 정신병을 치료하기위해서

입원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상당히 장수했습니다

알코올 중독 치료를 위해서 어머니의 지도를 통하여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이후로는 근현대

미술 사조와 유리되어서 자신만의 예술 세계에 몰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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